posted by 늘 기쁜콩 2019. 6. 25.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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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돌아오지 않는 강> 연작, 1956년, 종이에 연필과 유채, 개인 소장.

이중섭의 마지막 작품인 <돌아오지 않는 강>이다. 그림 네 장의 구성이 모두 같다. 집 창문에 몸을 기대고 있는 남자와 머리에 무언가를 이고 돌아오는 여자를 대칭 구도로 묘사했다. 여자의 표정은 알아볼 수 없는데, 그림 속 사내는 여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듯 보인다. 죽기 직전의 이중섭은 기다림의 정서로 이러한 그림을 여러 점 반복해서 그려내었다.
그런데 그림의 제목이 <돌아오지 않는 강>이다. 이중섭 그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화가 이중섭(1916~1956)의 삶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격은 삶이었다. 일제 강점기 직전에 평안남도 평원에서 태지주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그 어려운 시절에도 일본으로 미술유학까지 다녀온 행운아였지만 해방 이후 6.25전쟁이 터져 맨몸으로 부산까지 내려와 막노동을 하며 힘든 피난생활을 하다 병들어 41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기까지 예술혼을 꽃피운 사람이었다. 힘든 생활중에도 손에 잡히는 모든 것으로 그림을 그렸고, 먹을것이 없어도 그렸고, 외로워도 그렸고, 그저 그리고 또 그렸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여인, 야마모토 마사코, 이남덕이 있었다. 20세에 일본으로 유학을 가 도쿄의 분카학원에서 만난 2년 후배인 마사코....사랑했지만 여러가지 시대 상황으로 마사코를 일본에 두고 귀국해야했다. 일본 재벌 미쓰이 재단 임원의 딸이었던 마사코는 자신의 조국을 버리는 결단을 내리고 이중섭을 찾아 일본과 한국을 잇는 마지막 배에 올라 한국의 '이남덕'이 된다. 그러나 이들의 신혼은 너무나 짧았다. 6.25전쟁으로 두 아들과 조카 영진과 함께 피난길에 오른다. 막내아이의 기저귀 한장 챙겨서 내려오지 못했을 만큼 빈손으로 내려온 피난길은 경제적으로도 너무나 힘들었고, 이남적의 국적으로 수용소 내에서도 핍박으로 힘들었다. 그러는 1년6개월 사이에 부산과 제주도, 다시 부산으로 이동하며 이남덕은 폐결핵에 걸려 각혈까지 하고 두 아이는 영양실조에 걸려 결국 두 사람은 결단을 내리게 된다. 마침 고국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그녀 앞으로 얼마간의 유산이 상속되어 본인이 직접 가서 법수속을 밟아야 해서 두 아들을 데리고 이남덕이 일본으로 가게된다. 임시선원증을 만들어 일주일간 본에 가서 그녀를 만나고 온것을 제외하고는 영영 가족과 만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역시 가난때문이다.

그림 속 여인은 바로 집 앞에 당도했고, 여인을 기다리는 듯한 남자는 이제 곧 그녀와 만날 참이다. 하지만 그림의 제목은 <돌아오지 않는 강>이다. 이중섭은 마릴린 먼로가 주연한 영화의 제목 <돌아오지 않는 강>을 어쩌면 자신과 아내를 가로막은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는지 모른다. 아내와의 편지 연락에 무척 연연하던 그가 이 무렵부터는 편지를 뜯어보지도 않았다. 언젠가 만날 것이라는 희망마저 놓아버린 그는 1956년 7월말, 폭음으로 인한 극심한 간염으로 서대문 적십자병원 내과에 입원하고 한 달정도인 9월 6일에 쓸쓸히 홀로 숨을 거두었다. 무연고자로 신고된 그는 3일 후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찾아온 친구들이 그의 모몸을 거두어줄 때까지 시체실에 방치되어 있었었다. 끝까지 외로운 너무나 슬프고 아픈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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