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9.06.18 밀레이의 오필리아
  2. 2019.06.02 얀 베르메르 <화가의 아틀리에>
posted by 늘 기쁜콩 2019. 6. 18. 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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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1829-1876) & 오필리아 (Ophelia-1852)

밀레이가 그린 '오필리아'는 세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을 소재로 그렸다. 오필리아는 자신의 아버지가 연인 햄릿에게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고 미쳐서 강물에 누워 이승을 떠나려고 한다. 비련의 주인공인 오필리아는 이 작품에서 너무나 애잔하게 그려져 있다. 손에는 꽃 몇 송이를 들고 몸은 차가운 물속으로 잠긴다.

'거룩함과 순수로 포장한 관능의 미학'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이 작품은 사춘기의 설레임을 새롭게 자극한다.
이 그림들 앞에 사람들은 경탄과 막연한 그리움,
그리고 '아름다움의 슬픔'을 깊이 체감했을 때 갖는 느낌의 한숨을 내쉬곤 한다.

지옥의 심연처럼 어두운 물빛에 강하게 대조되는 그의 하얀 목,
핏기가 채 가시지 않은 뺨, 그리고 그 순결한 인상.
그런가 하면 주위의 목초와 꽃 등은 아직 이승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렸는지
여전히 햇빛을 그리워하며 일상의 호흡을 간단없이 계속하고 있다. 삶과 죽음이 갈리는 순간이다.

라파엘 전파가 열광했던 테니슨의 시처럼 밀레이의 오필리아는,
오필리아로 상징되는 빅토리아조 지식인들의 지고의 여인상은 그렇게 일찍 죽음의 물 위에 누었다.
한창 꽃피어나는 여인의 아름다움, 그 애로시티즘, 그리고 죽음, 그 대립.
그것은 억압된 관능이었고 바로 그 억압에 의해 더욱 강조된 관능이었다.

여기서 죽음은 도덕의 매개고리이다.
아버지를 죽인 자와의 사랑 관계에서 헤어나기 위한 유일한 도덕적 수단이다.
'도덕주의자'로서 밀레이는 그 '선한 죽음'을 주제로 택했으나,
종국에 그의 시선은 바로 그 주제에 의해 강조된 한 젊은 여인의 아름다운 눈동자와 부드러운 입술, 발그레한 뺨 위에 머물고 말았다.

그림 속 꽃의 의미

그림에 등장하는 꽃과 식물은 문학 작품 속의 단어처럼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오필리아의 드레스 등의 장미오빠가 그녀를 5월의 장미라고 부르던 것을 암시한다.
목 주위의 제비꽃신의, 순결 등을 의미한다.
팬지허무한 사랑을 알려주며, 수선화깨진 희망을 상징한다.
강가에 핀 양귀비는 깊은 수면상태, 더 나아가 죽음을 의미하며, '나를 잊지 말라'는 꽃말의 물망초가 물 위에 떠서 오필리아의 작은 바람을 담고 있다.

이렇게 각각의 꽃들을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의미를 둔 밀레이의 문학적인 상상력은 비극적인 사랑에 희생된 오필리아를 순수성과 광기를 동시에 가진 지닌 여인으로 재탄생시켰다.

버드나무: 버림받은 사랑
쐐기풀 : 고통
데이지 : 순결
제비꽃 화환: 정숙함, 요절
팬지 : 허무한 사랑
양귀비 : 잠과 죽음
수선화 : 깨진 희망

영국이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던 그 세익스피어. 세익스피어의 작품들 중, 그 중에서도 햄릿을 사랑했던 오필리아는 많은 화가들이 사랑하던 주제였다.

밀레이는 배경을 그리기 위해서 잉글랜드 호그스밀강 근처에서 넉 달 동안 머물면서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오필리아가 강물에 빠진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욕조에 물을 받아 놓고 그 속에 모델을 눕힌 채 한 달 이상을 작업했다. 그림의 모델이었던 엘리자베스 시덜은 덕분에 급성 폐렴에 걸려 무척 고생했다고 한다.

세익스피어의 비극을 이보다 더 아름답게 그린 그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그림이 더 비극적인 이유는 모델이었던 시덜이 32세의 젊은 나이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시덜은 라페엘 전파의 단골 모델이자 라파엘 전파 1세대 화가인 로세티의 뮤즈였다. 그녀는 로세티와 10년동안 동거하고 마침내 결혼했지만, 바람기 많은 로세티 때문에 두사람의 관계는 평탄하지 않았다. 로세티는 처음에는 시덜을 모델로 그렸는데, 화가로 점점 명성을 얻게 되자 다른 모델을 기용하며 그녀를 멀리했다. 이를 견디지 못한 시덜은 아편을 가까이하게 됙되고, 결국 아편 과용으로 자살 같은 죽음을 맞는다.

참고문헌 : 어쨋든 미술은 재밌다/박혜성/글담출판,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1/이주헌/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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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늘 기쁜콩 2019. 6. 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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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아틀리에>, 캔버스에 유화, 130X110cm, 1666년경, 빈 미술사 미술관

 

  • 불가사의한 고요함

서구의 오랜 회화의 역사 속에서 누구보다도 조용하고 누구보다도 정적을 사랑한 사람은 네덜란드 델프트의 얀 베르메르였다고 생각된다.

그의 작품의 대부분은 고요한 한낮의 햇빛에 비친 평범한 실내이며, 대개의 경우 한 사람, 많아야 겨우 둘이나 세 사람의 인물이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을 그린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베르메르의 인물은 자고 있거나

그저 아무 말도 없이 생각에 잠겨 있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 일을 하거나 때로는 둘이나 세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때에도 그들의 말소리는 우리에게 들리지 않는다. 베르메르의 세계는 마치 두터운 유리벽 저편에 있기라도 하듯 침묵 속에 잠겨 있다. 

 

<화가의 아틀리에> 의 장면은 그의 작품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검정과 흰색의 격자무늬 바닥이 있는 방, 아마도 델프트의 시장에 면한 메르메르 집의 한 방일텐데, 두터운 커튼 저편에 이젤에 얹힌 캔버스를 향하고 열심히 모델의 모습을 그리는 화가의 뒷모습이 보인다. 모델은 머리에 올리브 나무 잎으로 엮은 관을 쓰고 오른손에는 큰 트럼펫, 왼손에는 노란색 지의 책을 들고 몸을 옆으로 향한 채 얼굴만은 거의 정면을 향하고 있다. 단, 정면이라고는 해도 우리 쪽을 보고 있지는  그 직접 화가 쪽을 향하고 있지도 않고 시선을 내리깐 채 눈앞의 테이블 위에 놓인 여러 가지 물건들을 가만히 바라보고있는 듯하다.

 

바닥의 격자무늬 타일의 모양으로 보건대 관객의 위치는 거의 의자에 앉은 화가 바로 뒤이므로 같은 실내에 있는 셈인데, 이상하게도 이 화면을 처음 접했을 때의 인상은 마치 이웃집이라도 들여다보는 듯한 약간의 거감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첫째 베르메르의 깊이 표현이 교묘하기 때문이지만 동시에 이 화면을 지배하고 있는 기묘하기까지 한 고요함도 그러한 인상을 강하게 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푸른 의상을 입고 가만히 선 모델은 누가 무슨 이야기를 걸더라도 결코 입을 열 것 같지 않다. 화가는 뒤돌아 있기 때문에 어떤 표정으로 그림을 그리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입을 꾹 다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화가가 무언가 말을 걸고 모델이 거기에 대답하더라도 두 사람의 문답은 화면 앞쪽의 두터운 커튼에 흡수되어 우리가 있는 곳까지는 닿지 않 것 같다. 실은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이 아틀리에는 우리와는 분명 다른 세계에 속해 있는 것이다.

 

  • 얀 베르메르

얀 베르메르(Jan Vermeer, 1632~1675년)는 생활에서도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그는 생전에는 도시의 화가조합에도 등록되어 있고 이름이 알려진 화가였지만, 작품 수가 적은 데다가 거의 그림을 팔지도 않았기 때문에 사후에는 급속히 잊혀져 갔다. 베르메르의 이름이 시 역사에 등장 한 것은 그가 죽은 후 거의 200년이 지난 후였다.

그러나 다시 발견되고 나서 그의 작품의 매력은 회화를 애호하는 모든 사람을 강하게 사로잡아 떠나지 못하게 했다.

베르메르의 작품은 모두가 차분한 정적에 잠겨 있고 얼핏 보아 화려하지는 않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의 본령인 빛의 표현에서도 동시대의 렘브란트와 같은 극적인 격렬함은 없고 또 같은 실내의 묘사라고  하더라도 벨라스케와 같은 재기도 볼 수 없지만, 거기에는 어디까지나 자기의 세계를 지켜내는 뛰어난 예술가의 소우주가 있다.

 

참고 : 명화를 보는 눈/다카시나 슈지/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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