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늘 기쁜콩 2019. 6. 19.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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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페르메이르, 우유 따르는 여인, 1660년경, 레이크스 미술관, 암스테르담 Jan Vermeer, La Laitiere, Rijksmuseum, Amsterdam

얀 페르메이르의 <우유 따르는 여인>을 보면 시간의 두께를 느낄 수 있다. 밀도 있게 덧칠된 페르메이르의 색이 주는 실감나는 분위기는 사진이 주는 실감과는 완전히 다르다. 시간의 표피만 얇게 벗겨낸 듯한 사진에 비해 우리는 이 그림을 보며 두꺼운 색의 층으로 빨려들면서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실체를 강렬하게 느낄 수 있다. 한 가지 색에 이처럼 시선을 오래 머물 수 있는 것은 그 색이 단층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색이 표현하고 있는 것이 단지 한순간 지나가버리는 단순한 기계적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첩된 색의 층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그 순간에 동시적으로 지나가는 여러 시간들을 느낄 수 있다. 그림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재현함으로써 그 순간에 알지 못했던 잃어버린 시간들의 흐름을 비로소 알 수 있고, 이렇게 잃어버린 시간을 다시 찾음으로써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페르메이르의 <우유 따르는 여인>은 이런 식으로 중첩된 색을 통해 삶의 의미를 보여준다. 부엌 한구석에서 외롭게 일에 몰두하는 여인은 사실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여인이 입고 있는 노란색 상의와 파란색 앞치마, 항아리에서 떨어지는 우유 줄기, 테이블 위의 부스러진 빵 조각, 창으로 비쳐드는 햇빛에 빛나는 흰 벽, 벽에 걸린 광주리와 구리 광주리, 빛을 투과시키는 창, 바닥에 떨어진 상자. 이 모든 것이 여인 못지않게 각각 동일하게 극적인 의미를 가지고 한 그림에 그려져 있다. 어떤 부분을 분리해도 그 부분은 그 자체로 완벽하게 독립된 그림이다. 그것은 각 부분들이 시간의 층, 즉 삶의 의미를 두껍게 가지는 색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평범한 것들을 린 그림이면서 그림 속의 어떤 부분도 평범하게 느껴지지 않는 페르메이르 특유의 이상한 분위기는 소설가를 질식사시키기에 충분한 문학적인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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