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늘 기쁜콩 2019. 7. 17. 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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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 캔버스에 유채, 361X598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화가의 스튜디오라는 이 작품은 고전적인 타블로(회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당시의 이슈들-도시와 시골 사이의 변화하는 관계, 예술가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세계 사이의 새로운 계약 관계의 필요성, 당대의 폭넓은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영역 내에서의 예술의 위치, 새로운 혁명 후 질서가 일상의 안정성에 미치는 영향 등을 나타내고 있다.

작가인 구스타브 쿠르베는 이 <화가의 스튜디오>를 가리켜 "7년에 걸친 나의 예술적, 도덕적 삶을 압축한 진정한 알레고리"라고 말했다. '읽히기 위해' 그려진, 지극히 사적인 설명의 성격이 강한 작품이다.

그림 돋보기

화가의 스튜디오, 1855(부분)

-이젤 앞에 앉아 풍경화를 그리고 있는 화가, 그리고 그를 지켜보고 있는 나신의 모델과 한 어린아이가 타블로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왼편 캔버스 너머로 한 무리의 평범한 사람들이-유태인, 신부, 1793년의 공화주의자 참전군인, 사냥터지기, 옷옷감장수, 장의사,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 등등이 보이고 있다.
- 오른쪽, 화가의 건너편 어슴프레한 어둠 속으로는 쿠릅르베의 사상과 작품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그의 지기들을 볼 수 있다. 오른쪽 구석, 탁자 위에 앉아 있는 사람은 시인인이이자 미술평론가였던 샤를 보들레르이다. '사실주의' 소소설가였던 쥘 샹플뢰리는 쿠르베의 바로 뒤에 앉아있고, 과격파 정치 철학자였던 -칼 마르크스의 선배 격인 피에르-조세프 프르동은 뒤편에 서 있다.
-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해봐야 할 점은 스튜디오의 뒤쪽 벽이 흘러내리듯 풍경화와 실내 풍경이 녹아드는 효과이다. 훗날 화가 자신이 밝혔듯 쿠르베는 온 세상이 '그려지기 위해'자신의 눈에 보인다는 생각을 전달하고자 했다.

작가 보기

프랑스 사실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귀스타브 쿠르베는 에콜데보자르의 전통적적인 아카데미즘에 흐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개인 화숙에서 수학하는 한편 후브르에 걸려 있는 거장들의 작품을 모작하며 그림을 공부했는데, 특히 가라바조와 벨라스케를 각별한 열정으로 대했다. 쿠르베는 1844년 처음으로 살롱전에 출품했다. 정치적으로 과격파에 속했던 그는 나폴레옹 3세가 수여한 레종 도뇌르 훈장을 거부하고 파리 코뮌을 지지했으며 1871년에는 방돔 광장의 마폴레옹 1세 동상 파괴 사건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투옥되기도 했다. 동상 재건을 위한 배상금을 지불하는 판결을 받고 1873년 스위스로 망명, 187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스위스에 머물렀다.

사실주의

'사실주의'라는 명칭은 쿠르베와 그의 동료들이 1846년, 쿠르베의 스튜디오 근처의 '브라세리 앙들레르'라는 작은 음식점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들은 이 곳에서 정기적으로 회합을 가졌다. 소재를 의미하는 '사실주의'는 눈에 보이는 세상을 다루는 방식인 '자연주의'에 대비하는 개념이다. 즉 제아무리 비참하고 잔혹할지라도 동시대의 삶을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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