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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 말하는 삶

바니타스 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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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터 클라에스-피에터 클라에스, 1630년]



삶의 무상함이 마치 화면에 쓸쓸한 바람이 되어 부는 듯하다.


바니타스가 반드시 정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바니타스는 대개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정물, 초상, 풍경 등 제재를 이루는 부분과 두개골, 촛불, 모래시계 등 


무상함의 상징. 따라서 바니타스는 어느 제재와 결함하느냐에 따라 


초상일 수도 풍경일 수도, 때로는 풍속화일 수도 있다.



<부르크마이어 부부-루카스 푸르트나겔>처럼 초상화로 나타나기도 한다. 


언뜻 보면 별로 바니타스의 상징이라 볼 만한 것이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실은 저 거울이 바로 바니타스의 상징이다. 


부부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 안을 들여다보라. 희미하게 두 개의 두개골이 나타나 있다. 


여기서 죽음은 삶의 뒷면에서 삶의 내면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제 죽음은 삶의 본질이 되었다. 저 그림 속에는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한다. 


저 두 부부가 들어 있는 현실의 세계,그리고 그들을 반영하는 상이 있는 거울 속의 세계.

 

거울에 비친 상은 마땅히 가상, 현실의 그림자여야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 반대를 주장하는 듯하다. 


현실이야말로 덧없는 가상며


, 거울에 비친 저 두개골이야말로 진정한 현실이라고. 


거짓말을 못하는 거울은 삶의 본을 정직하게 비출 뿐이다.


<춤추는 죽음/진중권/세종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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