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술이 말하는 삶

얀 베르메르 <화가의 아틀리에>

반응형

 

<화가의 아틀리에>, 캔버스에 유화, 130X110cm, 1666년경, 빈 미술사 미술관

 

  • 불가사의한 고요함

서구의 오랜 회화의 역사 속에서 누구보다도 조용하고 누구보다도 정적을 사랑한 사람은 네덜란드 델프트의 얀 베르메르였다고 생각된다.

그의 작품의 대부분은 고요한 한낮의 햇빛에 비친 평범한 실내이며, 대개의 경우 한 사람, 많아야 겨우 둘이나 세 사람의 인물이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을 그린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베르메르의 인물은 자고 있거나

그저 아무 말도 없이 생각에 잠겨 있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 일을 하거나 때로는 둘이나 세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때에도 그들의 말소리는 우리에게 들리지 않는다. 베르메르의 세계는 마치 두터운 유리벽 저편에 있기라도 하듯 침묵 속에 잠겨 있다. 

 

<화가의 아틀리에> 의 장면은 그의 작품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검정과 흰색의 격자무늬 바닥이 있는 방, 아마도 델프트의 시장에 면한 메르메르 집의 한 방일텐데, 두터운 커튼 저편에 이젤에 얹힌 캔버스를 향하고 열심히 모델의 모습을 그리는 화가의 뒷모습이 보인다. 모델은 머리에 올리브 나무 잎으로 엮은 관을 쓰고 오른손에는 큰 트럼펫, 왼손에는 노란색 지의 책을 들고 몸을 옆으로 향한 채 얼굴만은 거의 정면을 향하고 있다. 단, 정면이라고는 해도 우리 쪽을 보고 있지는  그 직접 화가 쪽을 향하고 있지도 않고 시선을 내리깐 채 눈앞의 테이블 위에 놓인 여러 가지 물건들을 가만히 바라보고있는 듯하다.

 

바닥의 격자무늬 타일의 모양으로 보건대 관객의 위치는 거의 의자에 앉은 화가 바로 뒤이므로 같은 실내에 있는 셈인데, 이상하게도 이 화면을 처음 접했을 때의 인상은 마치 이웃집이라도 들여다보는 듯한 약간의 거감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첫째 베르메르의 깊이 표현이 교묘하기 때문이지만 동시에 이 화면을 지배하고 있는 기묘하기까지 한 고요함도 그러한 인상을 강하게 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푸른 의상을 입고 가만히 선 모델은 누가 무슨 이야기를 걸더라도 결코 입을 열 것 같지 않다. 화가는 뒤돌아 있기 때문에 어떤 표정으로 그림을 그리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입을 꾹 다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화가가 무언가 말을 걸고 모델이 거기에 대답하더라도 두 사람의 문답은 화면 앞쪽의 두터운 커튼에 흡수되어 우리가 있는 곳까지는 닿지 않 것 같다. 실은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이 아틀리에는 우리와는 분명 다른 세계에 속해 있는 것이다.

 

  • 얀 베르메르

얀 베르메르(Jan Vermeer, 1632~1675년)는 생활에서도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그는 생전에는 도시의 화가조합에도 등록되어 있고 이름이 알려진 화가였지만, 작품 수가 적은 데다가 거의 그림을 팔지도 않았기 때문에 사후에는 급속히 잊혀져 갔다. 베르메르의 이름이 시 역사에 등장 한 것은 그가 죽은 후 거의 200년이 지난 후였다.

그러나 다시 발견되고 나서 그의 작품의 매력은 회화를 애호하는 모든 사람을 강하게 사로잡아 떠나지 못하게 했다.

베르메르의 작품은 모두가 차분한 정적에 잠겨 있고 얼핏 보아 화려하지는 않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의 본령인 빛의 표현에서도 동시대의 렘브란트와 같은 극적인 격렬함은 없고 또 같은 실내의 묘사라고  하더라도 벨라스케와 같은 재기도 볼 수 없지만, 거기에는 어디까지나 자기의 세계를 지켜내는 뛰어난 예술가의 소우주가 있다.

 

참고 : 명화를 보는 눈/다카시나 슈지/눌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