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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즐거움 찾기/재미난 옛날 이야기

오래된 역사를 가진 수세식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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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옛날의 수세식 화장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전부터 물을 이용해서 사람의 분뇨를 위생적으로 처리하는 수세식 화장실이 존재했다.

기원전 26세기경 인더스 문명권의 도시인 하라파와 모헨조다로, 그리고 기원전 18세기경 크레타 섬의 크노소스 공정에서도 이미 수세식 변기가 사용되었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고대 로마에서는 의자에 앉는식의 수세식 변소를 사용했던 사실이 홈페이 및 그 밖의 로마 유적들에서 확인되고 있다.

단순히, 발달한 수도 시설을 활용하여 좌식 변기 밑으로 물이 흐르도록 한 것이다.

중세 유럽에서도 성벽 속에, 또는 걸상식의 변기를 성벽에 매달고 배설물이 성벽 밑으로 흐르는 하수와 함께 성벽 밖으로 흘러나가게 했다.

18세기 초에 이르러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걸상식의 수세변소를 설치하였으나, 주로 사용된 것은 역시 의자식 변기였다.

의자식 변기의 설치와 제작이 아주 까다로워서, 그나마 일반 서민이 체면치레를 하면서 집안에서 용변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요강을 이용하는 방법뿐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배설물이 담긴 요강을 처리하는 방법이다.

당시에는 쓰레기 폐기에 관한 시민 의식이 없었던지,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요강 속의 배설물을 자기 집 창밖으로 비웠다. 집집마다 마치 화병에 담겨 있는 물을 버리듯, 창문을 통해 거리로 유유히 요강을 비운다고 상상만해도 ㅠㅠ. 그래서 프랑스의 경우에는 'Garw l`eau(창밖으로 버려지는 오물을 조심하라)'라는 경고의 말까지 나돌 지경이었다.

아마도 갑자기 쏟아지는 배설물에 봉변을 당한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현대식 변기의 탄생

 

오늘날 우리가 상용하는 현대식 변기를 개발한 사람은 영국 엘리자베스 1세 때 궁정인이자 시인이며 발명가인 존 해링턴John Harington(1561~1612)이었다.

존 해링턴 경,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유명한 궁정인이며 수세식 변기의 발명가

그는 1596년에 두 개의 수세식 변기를 만들어 하나는 자신의 저택에, 다른 하나는 자신의 대모인 엘리자베스 여왕을 위해 리치먼드 왕궁에 설치했다.

이 발명품은 물탱크의 바닥에 플러스 밸브를 달아 물을 내리는 장치와 배설물을 물로 씻어내리는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여왕은 한 달에 한 번 목욕을 한다고 '자랑'을 할 정도로 당시로는 예외적으로 청결에 신경을 쓰는 인물이었지만, 소음이 너무 커서 이 변기를 자주 사용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해링턴은 아마도 배변과 관련된 쪽으로 모종의 콤플렉스가 있었는지, 정적을 비판하는 글이나 시를 쓸 때 주로 똥오줌과 관련된 비유를 잘 들었고, 그 과 엘리자베스 여왕과 그 다음 왕인 제임스 1세의 총애를 잃어 거듭 궁정에서 쫓겨나곤 했다.

해링턴의 선구적인 발명품은 널리 사용되지는 못했고, 런던 시민은 해오던 대로 계속해서 지하 분뇨 구덩이에 배설물을 버렸다. 이 웅덩이 속의 내용풀은 끔찍하게도 자주 지상으로 흘러 넘쳤다.

당연히 수인성 질병이 만연해 여러 차례 콜레라가 발병하여 엄청난 피해를 불러일으켜, 이것이 위생상태의 근본적인 개선을 요구하는 계기가 됐다.

여영국의 변호사이자 사회 개역의 선구자인 에드윈 채드위이 '영국 노동 계급의 위생 상태에 대한 보고서'를 통해 도시 빈민들의 비위생적인 환경을 개선하고자 역설한 덕분에 완전히 새로운 상하수도 시스템이 마련됐다. 하수도관을 이용하여 사람들의 주거지로부터 먼 곳에서 하수를 처리할 수 있게 된 다음에야 수세식 화장실이 제 기능을 다 할 수 있게 됐다. 우리가 당연하게 접하는 수세식 변기는 오랜 세월에 걸친 노력의 산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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